먼저 이 글을 보러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누군지는 몰라도 어떤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겠거니 하고 들어왔을 것입니다.
나부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웹툰에 자주 언급되는 에피쿠로스의 역설이 자주 올라온다.
이 역설은 '신은 전능하며 신은 선한데 악은 존재한다'는 삼도 논법이다. 이 글을 읽어보면
신은 악을 없애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신은 전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능력도 있고 악을 없애려 하지도 않는가?
그렇다면 악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능력도 없고 없애려 하지도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를 신이라 부르는가?
에피쿠로스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신들이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지도 모르며,
따라서 현생이나 내세에서 우리를 벌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글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뒤통수를 맞은 것과 같았습니다.
학창 시절 때 가톨릭 신도들한테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들을 정리해놓은 것 같았습니다.
나는 아직도 신을 믿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조두순의 피해자들은 아직도 고통받는다. 조두순이 곧 출소를 하니 그가 두려워서 피해자가 피하는 상황이다.
신은 우리가 흔히 믿는 것처럼 나쁜 자를 벌하고 착한 자에게 상을 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신을 믿습니다.
최근에는 종교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많이 보입니다.
과거 과거 일본에서의 '십자가 밟기', 히틀러때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최근에는 코로나 때 모이지 말라고 하는데도 기어이 대면 예배 같은 신념들 같은 부정적인 신념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종교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왜 돼지보다 소중한가?"
왜 인간은 다른 가축들을 마음대로 죽여도 되는데
"그 권리를 누가 준 걸까?" 그 이유를 종교 말고는 딱히 이유를 찾기 힘듭니다.
우리가 평소에 의구심을 갖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들에는 종교가 많이 깃들어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 왔다고 그 종교를 한순간에 걷어내기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문명의 기반에 가장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원초적인 것들에 종교적인 것들에 많이 깃들어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윤리학에 있어서는 쾌락주의를 주장하여 쾌락주의 철학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그는 쾌락은 방탕자의 환락이 아니라, 고통과 혼란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종의 평정을 말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철학의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 데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하고 평온한 삶은 평정, 평화, 공포로부터의 자유, 무통의 특징이 있습니다.
스토아학파와 대조적으로, 에피쿠로스 학파는 당시 정치 참여에 흥미를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정치 참여는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신 에피쿠로스는 은둔을 지지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이러한 원칙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납니다.
lathe biōsas λάθε βιώσας (Plutarchus De latenter vivendo 1128c; Flavius Philostratus Vita Apollonii 8.28.12)
이는 "비밀스럽게 살라", "너 자신이 주목받게 하지 말고 삶을 살아라"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부와 영광을 추구하며 살지 말고 음식, 친구들 같은 소소한 것들을 즐기면서 이름 없이 살라는 것입니다.
에피쿠로스는 도덕적 지침으로 개인의 피해를 최소화와 행복의 극대화를 강조했습니다.
현명하고 바르게, 잘 살지 않으면 행복한 삶을 살기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지 않으면 현명하고 바르게, 잘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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